가사마쓰 사타유 기념비

이 기념비는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마을 촌장이자 아리다가와의 벼 재배와 제지 발전에 공헌한 가사마쓰 사타유(1598~1673)를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1619년,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 요리노부(1602~1671)는 기슈번(현 와카야마현) 통치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사타유는 요리노부 체제하에서 현재 아리다가와의 역사적 지구인 시미즈의 첫 촌장이 되었습니다. 쌀은 이 지역의 중요한 주식이었지만, 산간 지형의 특성상 쌀을 재배할 수 있는 평지가 한정적이었습니다. 사타유는 사비를 들여 약 3km 길이의 우와유 용수로를 계획하고 건설했습니다. 이로써 아라기지마 계단식 논을 포함하여 수많은 새로운 논을 개발하는 것이 수월해졌습니다.

요리노부는 사타유에게 기슈번에 와시(일본 수제 종이) 작업장을 세울 것을 지시했지만, 사타유는 제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제작 방법을 배우려 제지로 유명한 지구이자 현재 나라현에 속한 요시노로 갔지만, 요시노의 장인들은 사타유에게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사타유는 마침내 묘안을 떠올렸습니다. 요시노에 잘생긴 젊은 청년 세 명을 그곳으로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의 제지업자들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신부와 함께 시미즈(당시에는 야마야스다로 알려짐)로 돌아왔고, 신부들의 제지 기술을 지역 상황에 맞추어 활용했습니다. 그 후 현지 제지업자들은 야스다가미라고 불리는 새로운 종류의 와시를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타유의 공헌은 여전히 시미즈와 주변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1927년, 기념비를 세워 이 지역의 영웅을 기리기로 한 아리다가와 주민들은 건축 기금을 대고 인근 계곡에서 1톤 무게의 돌을 공들여 옮겨 왔습니다.